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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야구기구(NPB)가 주관하는 센트럴 리그(약칭 세리그)와 퍼시픽 리그(약칭 파리그)에 소속된 12개 구단의 프로 경기를 가리킨다. 센트럴 리그와 퍼시픽 리그와는 별도로 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같은 몇 개의 독립리그도 존재합니다.

일본 최고 인기의 프로 스포츠 리그이며, 전 세계 야구 리그 중에 돈의 끝판왕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이어서 2번째로 큰 규모와 경제성을 가진 리그이다. 야구가 국기인 나라의 리그답게 평균관중수로 따지면 메이저리그를 제치고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 12개의 팀이 있는데 모든 팀이 KBO와 유사하게 모기업을 끼고 운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들 기업들의 규모가 한국프로야구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비해 월등히 작다는 인식이 팽팽한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보는것이 맞습니다.

일단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운영하는 마쓰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운영하는 소프트뱅크의 경우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대기업이 맞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를 운영하는 라쿠텐은 전자상거래의 발전으로 인하여 대기업이 된 지 오래고 오릭스 버팔로즈를 운영하는 오릭스 역시 미즈호, MUFJ, SMBC 같은 일본을 대표하는 초 대규모 은행들에 비해 규모가 작다 뿐이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비교했을때 마스터카드보다 큰 규모의 금융회사다. 한신 타이거즈를 운영하는 한신 전기철도의 모체인 한큐한신토호그룹은 철도, 유통, 미디어를 망라하는 대기업이다. 그 밖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세이부 철도도 한큐한신토호그룹에 못 미치는건 사실이나 대형 사철의 일원답게 대기업에 걸맞은 규모라 할 수 있다.

일본야구중계 방송, 당신은 어떤 추억이 있으신가요?

과거부터 일본 프로야구는 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던 아이템이기도 합니다. 우리 선수들의 진출에 따른 일본야구 중계, 때론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때론 조용하게 지나치기도 했죠.

오릭스는 투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를 모두 보유한 팀으로 분명 벌써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선발로 나서고, 이승엽 선수의 활약이 조금만 펼쳐진다면 분명 오릭스 중계방송의 매력은 가득할 터.

선수들의 활약과 무관하게 일단 중계권 논의가 무성하고, 이런저런 이유에서 종편들도 관심을 가질 듯합니다. 만약 이번 일본 프로야구 중계가 대박이 된다면, 일본 프로야구 중계방송의 세 번째 전성기라 할 수 있을 듯한데요.

앞선 두 번의 전성기를 한번 돌이켜 볼까요?

첫 번째 일본 프로야구의 전성기라면 1990년대말 주니치 드래곤즈가 떠오릅니다. 선동열,이상훈,이종범 등 한국인 3총사를 앞세운 주니치가 11년 만에 정상에 도전한 1999년!


당시의 일본 프로야구 생중계는 일본 프로그램의 개방이란 화두로도 주목받았는데요. 스포츠 채널이 없던 당시엔 일본 위성방송을 유선방송에서 중계하다가 나중에는 지역민방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때 일본에 진출한 조성민이나 정민철, 정민태 선수는 그만큼 주목받지 못했고. 점차 일본야구중계는 시들해졌는데요. 성공 사례로 꼽히는 오릭스 버팔로스의 구대성의 경우도 중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일본 프로야구, -이번 이승엽과 박찬호가 뛸 팀도 바로 그 오릭스죠.

두 번째 기회는 2000년대 중반에 찾아왔습니다.

바로,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의 맹활약이 펼쳐지던 2006년. 요미우리 프로야구 중계방송은 최고의 히트상품이었습니다. 평균 점유율은 20%가 넘고, 케이블로는 엄청난 시청률인 3% 이상의 기록을 보여주던 2006년 여름의 일본 프로야구 중계, SBS스포츠는 당시, 일본 프로야구로 상당한 재미를 보고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거.

당시의 인기는 엄청난 것이어서 구단용품점이 서울에 오픈했으며, 요미우리 전 경기 중계를 가능케 했습니다. -물론, 이어진 시즌 중계에선 오히려 앞서 얻은 이익과 호평보다 더 큰 비난을 받기도 했죠.-
스포츠 채널에서 일본 프로야구가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시절은 아마 이 때가 아닐까 싶은데요. 일본 최고의 구단이라 할 요미우리의 4번 타자가 우리 선수라는 건 여러 가지로 큰 뉴스가 됐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기고 지는 구분이 명확한 우리 프로야구 중계가 아닌, 왠지 국가대표 경기와도 비슷한 우리 선수가 뛰는 구단의 일본 야구중계, -마치 박지성 선수의 멘유를 응원하는 것과 비슷한 풍경이죠.- 분명하게 안정적인 시청률이 보장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선수들의 활약과 팀의 선전이 그 가장 큰 요인이라 할 터, 앞선 두 번의 일본야구 중계의 전성기는 우리 선수들의 활약과 구단의 성적이 모두 절묘하게 겹쳐지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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